류충현약용버섯

안동사랑

홈 > 회사소개 > 안동사랑

아!! 박대통령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7-01-15 10:38 조회1,398회 댓글0건

본문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너무나 맘에 드는 글이라 퍼 왔습니다.

park-a_1.jpg


노무현 정권의 키워드는 박정희인가 봅니다.
나라가 온통 박정희 판입니다. 해가 떠도 박정희, 달이 떠도 박정희입니다. 국회와 국정원 등 정부 각기관의 과거사 관련 입법과 규명 작업에서부터 친일 논쟁에다 의문사조사위원회,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인터넷에다 텔레비전에다 영화까지 ‘박정희 올인’으로 국력 소모가 대단합니다.
반(反)박정희주의자들이 집권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들 주변 세력의 발호 또한 가열찹니다. 좋은 말도 세번 들으면 싫은 법인데, 박정희 욕하는 소리에 신물이 날 지경입니다.

박정희는 역사 속에 있습니다.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입’들이 그렇게 공격을 계속하는 것은 그를 이기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합니다. 왜 그럴까요. 반박정희주의자들은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광신도’, ‘박통진리교’, ‘향수병자’, ‘수구꼴,통’ 등 막말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발탄을 쏘고 있는 겁니다.


먼저 ‘향수병’에 대해 말하지요. 좋았던 시절, 잘 나가던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말인데, 어휘 선택의 오류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서울 문래공원에 있던 박정희 흉상 앞에 날마다 소주잔 올리고, 담배도 올리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노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박대통령 시절에 무슨 벼슬을 하고 무슨 덕을 보았겠습니까. 박대통령의 구미 생가에 하루 평균 1천명의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국립 현충원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박대통령 내외의 묘소를 찾는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다 이 땅의 서민들입니다. 정작 향수병을 가졌음직한 3공화국의 인물들은 늙고 기운 떨어져 조용합니다. 애꿎은 이 땅의 서민들을 ‘향수병’ 운운하며 병자 취급하고 있으니 오기가 나서라도 더욱 그를 옹호하고 싶을 겁니다.


병에 걸린 것은 일반 국민이 아니라, 반박정희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중증의 ‘역사 매저키즘’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역사를 이렇게 짓밟는 정권은 지금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병적 발광도 이런 발광이 없습니다.

다음은 ‘광신도’입니다. ‘박통진리교’에 아주 미쳐버렸다는 거죠. 그런 사람 딱 하나 있습니다. 북한의 김정일입니다. 그는 중국에 특별기까지 보내 박근혜 의원을 모셔갈 정도로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는 또 정주영 명예회장이 방북했을 때 박대통령이 좋아했다는 고양 막걸리를 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소떼를 몰고 방북할 때 따로 배편에 고양 막걸리를 싣고 갔다는 것 아닙니까. 김정일이 그 정도입니다.

정치를 모르고 소박하게 사는 일반 국민들을 ‘광신도’ 운운하며 미친 사람 취급하니, 박정희에 대한 욕이 부메랑이 되어 반박정희주의자들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가는 방망이에 오는 홍두깨 격이지요. 반박정희주의자들은 가늠자도 없는 총으로 조준 없이 총질을 하는 겁니다.


김정일이 박정희 광신도입니다. 그런가 하면 현 집권 세력의 좌파 또는 주사파 출신들은 음산한 친북 정서(親北情緖)를 갖고 있습니다. 주체사상 본바닥의 김정일로서는 이들의 친북 정서를 끔찍히 고마워해야 할 터인데, 그들이 치를 떨며 증오하는 박정희를 신봉한다는 사실이 꽤 흥미롭지 않습니까. 김정일이라고 왜 북한 인민들을 잘 먹이고 싶지 않겠습니까. 청와대에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데, 김정일은 ‘새마을 노래’를 부르고 싶은 겁니다.

김정일이 ‘박정희 경제’를 떠받드는 것은 정치와 경제를 포함해서 북한 전역을 지배하던 주체사상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이 땅의 주사파 출신들을 어떻게 볼까요. 유치원 재롱둥이로 보일 겁니다. 재롱둥이 주사파 출신들이 청와대와 열린당에 바글바글합니다. 그들이 ‘진보’라고 하니, 뒤로 가는 ‘진보’도 있습니까. 방향 착오, 시대 착오도 유분수지 그게 ‘진보’라니 김정일이 기막혀 웃을 개그콘서트 아니겠습니까. 속된 말로 쪽 팔려서 어디 국민 노릇 해먹겠습니까.


김정일은 박정희의 성공을 엄청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경제’를 연구하고 그것을 모델로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지요.
나는 박정희의 성공의 키포인트를 미래주의라고 말하렵니다. 박정희는 미래주의자입니다.

보릿고개를 없앤 대통령이라 하지요. 숙명 같은 가난을 물리친 지도자라고 하지요. 박정희가 그것뿐이라면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소리입니다. 배고픔이 해결되었다고, 아니할 말로 먹고 싸버리기만 해서는 뭐가 남겠습니까. 먹고 싸기만 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안되었지요.


돌이켜봅니다. 식민지 시대를 겪었습니다. 전쟁을 치러 폐허가 되었습니다. 모진 가난에 허덕였습니다. 외국 원조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그것이 운명이려니 세월 흘러가는 대로 맡겨져 표류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에 박정희가 뜬금없이 나타나 미래를 결정짓겠다고 소매 걷어붙이고 나선 것입니다. 그는 미래로 가는 길을 더듬어 찾았습니다.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등 당시로서는 가당치도 않다고 하는, “쓰레기 위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는 조롱을 받으면서, 갈 길 바쁜데 허구헌날 바짓자락만 붙잡고 늘어지는 정치꾼들을 물리친 그의 고독한 카리스마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 아침 신문에 책 광고가 났군요. “죽은 독재자는 낡은 가죽 벨트를 매고 있었다”라는 카피에, 수줍게 웃는 사진과 함께 <주식회사 대한민국 CEO박정희>라는 제목입니다. ‘낡은 가죽 벨트’가 눈에 띄니 그 분이 생각납니다. 내가 아는 옛날에 중소기업 사장하던 분이 있습니다. 그가 수출 공로로 청와대에 갔었습니다. 대통령 하는 말이 “여러분 고맙소”하더랍니다. 내 돈 내가 버는데 고맙긴……하는 생각과 함께 그 분도 대통령과 악수할 때 대통령의 와이셔츠 깃이 헐어 있는 것을 보았답니다.

대체 육여사는 살림을 어떻게 하는 거야……라는 원망이 들면서 어쩔 줄 모르게 숙연해지더랍니다. 그는 회사로 돌아와 야전침대를 갖다놓았습니다.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배달 온 자장면을 서서 먹었습니다. 그 분은 소년 시절에 구두닦이, 신문 배달 안해본 것이 없습니다. 동냥도 다녔답니다. 거지 생활 말입니다. 그 분은 “김형, 일주일을 굶어 보았소?”하고 내게 묻습니다. 그런 그가 평생을 살면서 들을 수 있었던 가장 따뜻한 말이 대통령의 “여러분 고맙소” 이 한마디였답니다.

꿈꾸는 데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꿈은 공짜입니다. 게다가 무한대입니다. 지독히 가난해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게 꿈입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등장하기 전, 우리는 자학에 가까운 ‘엽전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난에 찌들 대로 찌들어 의욕과 자부심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꿈이 없었습니다. 박정희는 염력(念力)의 마술사처럼 온 국민에게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 꿈은 미래의 그림입니다. 그 그림을 보여주고 이 나라를 그림처럼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미래주의는 현실과 마찰을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박정희의 호쾌함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점입니다. 당대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은 점입니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현실착오적 발상으로 전진한 점입니다. 그것이 아니고는 대책없이 국제사회 한구석에 버려진 대한민국이 환골탈태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혁명을 한 사람입니다. 목숨을 내놓고 나선 사람이 뭐가 무섭겠습니까. 그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모 대학교수도 “신화 창조”라는 말을 쓰더군요. 그렇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학자다운 태도 아니겠습니까. 그의 집권 18년은 장쾌한 서사시(敍事詩)였습니다.

그는 지식인들과 그리 친한 편이 아닙니다. 지식인들이 안된다는 일을 밀어붙였으니까요. 18년의 결과물이 결국 지식인들은 부끄럽게 했습니다. “그가 옳았어”라고 신앙고백하듯 하듯 말하는 지식인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박정희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는 발전할 수 있었어. 그리고 저임금에 혹사당한 노동자들의 땀이 소중하지, 하나부터 열까지 박정희가 다했다는 게 말이 되나? 생각해 봐. 산림녹화를 잘했다는데 산과 들의 나무를 박정희가 심었느냐 말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원” 반박정희주의자들의 궁색한 논리가 여기 있습니다.


역사는 꿈틀거립니다. 역사는 충돌의 에너지로 꽉 차 있습니다. 승자와 패자가 있습니다. 역사의 판정은 번복될 수 없고, 번복을 가정해 본다는 것도 부질없는 노릇입니다. “박정희가 아니더라도……”는 후손에게 물려주기 곤란한 패배주의 DNA입니다.

그런 군시렁거림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북한이 못사는 것이 인민들 탓입니까. 북한의 산과 들이 헐벗은 것이 인민들이 나무 심기를 게을리한 탓입니까. 김일성이 “안돼”라고 입산금지 명령 한마디면 저렇게 민둥산이 안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땔감이 없는데 어쩌겠습니까. 겨울에 얼어죽을 수야 없지 않습니까.


지도자에게는 권력이 주어지지만 국가경영의 철학과 능력이 요구됩니다. 일 잘하라고 권력을 주는 겁니다. 권력만 갖고 일을 못하니까 김정일이 저 모양 저 꼴 아닙니까. 그것도 아버지에게 상속받은 권력으로 말입니다. 오죽하면 그가 아버지의 웬수였던 박정희의 광신도를 자처하겠습니까. 박정희가 좋아하는 막걸리까지 마시면서…….


나무를 심는 것은 미래를 심는 것입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 나무를 심습니다. 박정희의 산림녹화는 그가 미래주의자임을 말해주는 가장 알기 쉬운 증표입니다.

나는 말년의 박정희가 헬리콥터를 타고 공중에서 그가 만든 ‘대한민국’을 내려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미래주의자 박정희는 대한민국 역사의 전개 방향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한 시대가 가면 다음에 어떤 시대가 올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그 말에 박정희의 머릿속 그림이 있습니다. 산업화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민주화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민주화의 시작은 그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당연히 그는 자기를 밟고 대한민국이 앞으로 가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선 사람이니까요.


개발의 삽질을 할 때 돌팔매질하던 놈들(박정희 버전입니다), 용광로에서 땀 흘릴 때 화염병 던지던 놈들에게 다음 시대를 넘기자. 그렇게 가는 것이 역사의 순리다. 박정희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말로 자기 시대의 종막을 예언했던 것입니다.

지금의 이 시대가 불행한 것은 집권 세력이 물려받은 패배주의 DNA입니다. 이들은 산업화에 눈곱만큼도 이바지한 게 없습니다. 그러니 산업화 시대에 관해 말을 하지 않습니다. 꿀 먹은 벙어리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산업화 시대 말하는 것을 들어보았습니까. 입 다물고 있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을 것처럼 그렇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인데 말입니다. 외면하고 있죠. 집권 세력의 콤플렉스입니다.

박정희 콤플렉스. 그래서 박정희의 독재를 욕하는 겁니다. 이것저것 다 들추어내서 여자 관계가 어떻다는 둥…치사하기 짝이 없죠. 치사한 짓거리는 양아치 근성입니다. 과거사 타령이 천안삼거리 능수버들처럼 늘어지는데, 아니 저것들 주사파는 오매불망 흠모하던 김일성이에 대해서는 왜 고백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건달도 못됩니다. 건달은 작은 것에 눈 돌리지 않습니다. 법도가 있습니다. 그게 건달입니다. 양아치는 큰 것 작은 것 가리지 않습니다. 비굴한 잔챙이가 양아치입니다.


10대 청소년들은 역사 속에서 우상(偶像)을 찾으려 합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죠. 박정희는 우리 기성세대가 근현대사에서 찾아서 보여줄 유일한 성공사례입니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습니다. 나쁜 독재자라는데 왜 일을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 다른 높은 사람들은 부정 부패로 감옥에 가는데, 내 맘대로 뭐든지 할 수 있는 독재자가 왜 그렇게 청빈했을까. 왜 다른 정치인들은 경부고속도로를 만들겠다는데 반대만 했을까. 왜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분을 지금에 와서 욕하는 걸까. 이런 분이 나쁘면 이 분을 욕하는 사람들은 참 좋은 사람들인가.

박정희를 공격하려면 그를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고 들입다 욕설만 퍼부으니 정치가 시정잡배들의 각다귀판이요, 정말 아이들 보기 부끄럽습니다.

집권 세력은 박정희의 미래주의를 배워야 합니다. 공부해서 남 주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이미지를 보세요. 거기에 수십년 후의 대한민국이 보입니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내년도, 아니 내일도 안보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불행입니다.

인생은 유한합니다. 엄마 품에 태어나 늙고 병들어 칠성판 지고 북망산 가는 것은 누구나 똑같습니다. 짧은 한 생을 살면서 팔 휘둘러 악쓰고 남을 증오하는 것도 한때여야지, 청와대에 가서까지 ‘님을 위한 행진곡’ 향수(鄕愁)를 노래하니 이게 제대로 된 나라입니까. 주사파 시절이 그렇게 그립습니까. 주체사상이 그렇게 황홀합니까. 그리고 그게 민주주의입니까. 그러면 지금 북한은 민주주의 천국이 되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됐지만, 거지발싸개 아닙니까. 재앙 덩어리 아닙니까.


민주주의가 무엇입니까. 인간을 존중하는 겁니다. 인권을 기본으로 합니다. 인권은 곧 인간다운 품위입니다.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입니다.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국가가 국가다운 품위를 갖추지 못하고서는 민주주의도 없습니다. 굶주림의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듯이, 민주주의도 산업화 후의 과정입니다.


다시 말해서 박정희의 산업화는 가장 튼실한 민주주의의 토대인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독재는 사랑과 미움의 관계입니다. 서로 반대쪽에 까마득히 떨어져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은 사랑과 미움의 미묘한 복합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민주와 반민주가 그렇습니다. 반민주 속에 민주가 잉태됩니다. 민주화 요구가 발생하는 겁니다.

박정희, 그는 역사의 이정표를 훤히 내다보며 독재라는 역사의 악역(惡役)으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였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땀 한방울까지도 남김없이 다 주고 여한없이 혼신을 불태우고 훠이훠이 역사 속으로 자리를 옮겨갔습니다.


지금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소수의 반박정희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 한복판에 박정희가 위치하기 때문에 그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건국→전쟁→산업화→민주화의 흐름을 인정하지 않고 3·1운동→4·19의거→5·18광주사태→6월항쟁 이렇게 가겠다는 겁니다. 이승만의 건국과 박정희의 산업화가 온데간데없습니다.


개구리에게는 올챙이 시절이 있습니다. 그걸 없는 것으로 하겠다 함은 번식력을 상실한 개구리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슨 얼어죽을 다음 정권을 창출하네, 20년 집권 계획을 세우네 하고 꿈을 꾸는 겁니까. 이런 게 바로 개꿈이라는 겁니다.

대체 지금의 한줌도 안되는 집권 세력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까, 땅에서 솟았다는 겁니까. 제 부모도 없는 천둥벌거숭이들입니까, 놀부 바가지에서 튀어나온 왈패들입니까.
허구헌날 과거사 타령으로 도배를 하는 패배주의 DNA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21세기입니다. 천년 단위가 막 꺾여진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세계의 질서는 어떻게 변화해 갈까.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는 시대의 급속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분단국 아닙니까. 우리 팔자가 그렇습니다.

그나마 남쪽만이라도 이만큼 사는 게 다행이지, 남북이 모두 거지발싸개라면 이 빌어먹을 놈의 땅덩어리에서 숨 헐떡이며 살고 싶겠습니까.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미래주의자 박정희에게 미래를 보는 안목을 배워야 합니다.

북한을 어떻게 떠안을 것이며 중국 동북3성 지역의 ‘한국화’와 중국의 고구려 역사 훔쳐가기 등, 지도만 들여다보아도 골이 지끈거리는데, 온나라가 박정희 굿판으로 세월 가는 줄 모르니 재수 옴붙은 정권만 탓해 무얼 하리오.


“과거와 싸우지 말고 미래와 싸우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말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렵니다.
“박정희와 싸우려거든 그의 미래주의와 싸워라”

다시 말하는데, 박정희는 우리 기성세대가 아이들에게 넘겨줄 유일한 성공사례입니다. 겨우 그거 하나 건져 갖고 있는데 그것까지 말살시키려는 자들은 대체 누굽니까. 대한민국 사람 맞습니까?

출처: 권영복 홈피<한시민의글>

  • 나의쇼핑정보
  • 장바구니
  • 배송조회
  • 오늘본상품
  • 없음
  •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