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충현약용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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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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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류충현약용버섯 작성일05-12-16 11:57 조회1,4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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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균님의 글입니다. : :
: ▣.회룡포 (回龍浦) : : 05022008A.jpg : : 호박 매달린 듯한 형국 : : 회룡포의 모래사장과 숲과 왜가리.오로지 땅의 생김만으로 어디가 가장 물도리동다운가 하고 경합을 벌여본다면 안동 하회는 예천(醴泉)군 용궁(龍宮)면 대은(大隱)리 의성포(義城浦·혹은 회룡포·回龍浦)에 으뜸 자리를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지형도를 보면 안동 하회는 물이 돌아 나아간 정도가 버선발과 비슷하다. : : 이에 비해 의성포는 금방이라도 똑 떨어질 것 같은 호박 형국이다. 말 그대로 영락없는 물도리동인 것이다. 한반도에 물이 굽이져 나간 곳이 부지기수이지만 이곳처럼 한 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물돌이동은 다시 찾아보기 어렵다. : : 내성천은 큰 용이 물길을 가로막아 마을을 휘어감고 돌아 승천하는 모양을 하고 있고, 주변의 비룡산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이곳을 찾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이런 빼어난 경관으로 드라마 ‘가을동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 : 장안사 뒤 비룡산에 회룡포 전망대 : : 회룡포의 진면목을 보려면 마을 안으로 가지 말고 마을 서편 비룡산 등성이로 올라가 봐야 한다. 우선 용궁면 소재지에서 동쪽 예천읍 방면으로 가다가 도로 오른쪽의 서울종묘 용궁대리점 간판이 붙은 건물 옆 길로 접어들어서 3km 남동진하면 장안사 입구 팻말이 선 갈림길이 나온다. : : 이 샛길로 남진, 성저교란 콘크리트 교량을 건너자마자 좌회전하여 경사진 길을 끝까지 올라가면 장안사 바로 아래의 주차장이다. 여기 주차한 뒤 100여m 길을 따라 올라가 산등성이 왼쪽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회룡포 전망대가 나온다. : : 호떡처럼 둥글납작한 형상으로 보여 : : 호떡처럼 둥그스름한 형상의 반도(半島)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그 기묘한 느낌은 뭐랄까. 조금 과장해서 어안(魚眼)렌즈를 들이댄 것 같다. 두리반에 잘 밀어 편 것 같은 둥근 반도의 중앙부에 마을이 자리잡았고 그 주변으로는 반듯이 구획정리를 한 전답이 깔렸다. : : 그리고 그 바깥으로는 희디흰 백사장과 푸른 내성천 물줄기가 길게 두 겹의 띠로 둘러쳐졌다. 내성천은 낙동강의 한 지류로서, 이곳 회룡포에서 약 35km 하류에 낙동강 본류가 이룬 안동 하회가 자리잡고 있다. : : 회룡포 마을 주민들의 요긴한 통로인 \'아르방다리\'.\'아르방 다리\' 없으면 못 살아 : 회룡포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면 성저교를 다시 건너가서 \'장안사 입구\'란 팻말이 선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야 한다. 1.5km쯤 더 동진하면 옛 회룡교 바로 옆에 신축한 구룡교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주욱 들어가면 도로 끝지점에 작은 주차장이 있다. : : 여기에 주차하고 주민들이 \'아르방다리\'라고 부르는 철다리를 건너야 한다. 건물 공사때 비계(飛階)용으로 쓰이는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을 두 줄로 깔아 놓은 다리를 주민들은 그렇게 부른다. : : 보기에는 엉성해도 이 철판 다리는 오토바이 정도는 무난히 견뎌 내며, 주민들에게는 고맙기 이를 데 없는 다리다. 3년 전 의성포의 가느다란 목줄기인 사공목지로 차도가 뚫렸지만 너무 먼 거리를 돌아야 한다. 때문에 여전히 이 아르방 다리가 동맥의 역할을 한다. : : 예나 지금이나 \'뭍 속의 섬\' : : 주민들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엔 물 불으면 꼼짝 못했지요. 벌건 합성수지로 만든 \'다라이\'가 흔해진 것만으로도 살겠다 싶었던 것이, 거기다 작은 애는 셋, 큰 애들은 둘 정도 태워서 어른이 떠밀어서는 학교는 보낼 수 있었으니까. 그러다 78년도인가, 철선이 생겼어요. : : 저기 강 건너 회룡마을이 회룡교 다리가 놓이며 필요 없어진 것을 우리가 사서 썼는데, 그도 삭아서 그만 못쓰게 되는 바람에 아르방 다릴 놓은 거지요." : : 아르방 다리는 겨울에 더 요긴하다. 왜냐하면 옛적 겨울에는 소구루마가 다닐 정도로 얼음이 잘 얼었는데 이제는 겨울이 따듯해져서, 사람 건너기도 겁날 정도로 얇게 얼기 때문이다. 지형도를 보면 회룡포의 목줄기는 수면에서의 높이가 약 15m, 폭은 약 80m에 불과하다. : : 그래서 뭍 속의 섬이란 표현이 더없이 어울린다. 실제로 이곳 주민들의 생활은 외딴 섬의 그것처럼 이어져 내려왔다. 폭풍우가 몰아칠 계절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생필품을 사재기해두어야 했고, 난리 때는 피난민들이 외딴 섬으로 도망가듯 몰려들기도 했다. 옛적 한때는 절해고도 같은 유배지였다. : : 의성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해서 \'의성포\'가 원명 : : 1991년 간 <한국 땅이름 큰사전>에 보면 \'의성포(義城浦)는 회룡 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내성천이 감돌아 흘러 섬처럼 되었고, 조선조 때 귀양지였으며, 고종 때 의성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룩하였다\'고 했다. : : 그래서 지명이 의성포가 된 것이란 뜻일 것이다. 이 의성포를 예천군에서는 98년부터 회룡포로 부르기로 했다는데, 이는 의성포라고 하면 관광객들이 의성군에 있는 것으로 착각할까 싶어서였다고 한다. : : 6.25 전란도 피해간 길지(吉地) : : 아무튼 이 회룡포에는 대대로 경주 김씨 집안 사람들만 살고 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풍양면 청운3리 사막마을 살던 경주 김씨 조상들이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하며, 현재 8가구 주민 모두 경주 김씨다. 선산은 아직도 사막마을에 있다. 타성받이가 간혹 들어왔지만, 아무리 애써서 도와줘도 3년을 못 견디고 나갔다고 한다. : : 18세때 이곳 회룡포의 김철수씨에게로 시집 와서 3남2녀를 두며 82세가 되도록 살아온 최경영할머니는 그래도 여기가 사람 살만한 데라고 두둔한다. 그 험한 6.25사변 때도 여기는 피아간 군인들이 들르지 않았으며, 근동의 큰 마을에서 살던 사람들이 숱하게 이 외진 마을로 들어와 목숨을 부지했다고 한다. : : 과거 마을 근처에 각각 1,000여 평씩 두 군데 있었던 큰 솔밭 밑에 진을 치고 살던 피난민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최할머니는 돌이킨다. 그 멋진 소나무들은 아쉽게도 모두 베어내 팔고 그 자리는 논으로 개간했는데, 그게 지금도 너무 안타깝다는 주민들이다. : : 강변 모래사장 풍치는 가을이 제격 : : 현재 8가구 가운데 차를 가지고 있는 집은 두 집뿐. 그러므로 장마철에 다리가 넘쳤을 때 택시로 용궁면소재지까지 나가려면 멀리 개포면소재지로 돌아야 하므로 15,000원이나 든다. 그래서 장마철을 앞두고서는 여전히 생필품을 미리 준비해두어야 한다. : : 회룡포마을을 빙 둘러쌓은 제방을 따라 걷다가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물가로 한 바퀴 돌았다. 곱디고운 모래사장에서 열기가 후끈 끼쳐온다. 그늘이라야 제방의 서너 그루 포플러나무가 드리운 것이 모두이고 한여름 낮에는 수온도 올라가므로 피서지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 : 그러므로 회룡포 탐승은 한여름 이외의 계절, 특히 가을을 택할 일이다. 마을 안의 곡식이 익어 황금 벌판을 이루고 주변 산릉도 오색으로 치장하기 시작할 때 선들바람을 맞으며 회룡포 모래사장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다. : : -해설자료 : sanyaro/여행등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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