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충현약용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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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명소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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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류충현약용버섯 작성일05-12-16 11:47 조회1,7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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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희걸님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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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명소 안내]

- 가볼만한곳 모두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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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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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명소 : ▣고산서원▣ : gosan.jpg : : 바위산으로 둘러진 암산을 마주보며 질서정연히 자리잡은 서원이다. 고산서 : 원은 퇴계선생의 도학 적전인 대산 이상경(1711~1781) 선생과 아우인 소산 : 이광정(1714~1789) 선생을 제향하기 위하여 지어졌다. : : 대산선생은 25세에 문관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형조참의에 제수되었 : 으나 사퇴하고 퇴계 선생의 학통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연구하는 한편, 후진 : 양성에 전념하였다. 문인록에 등재된 제자만도 273인이나 된다. : : 고종 19년(1882) 이조판서에 증직되고 순종 4년(1910)에 문경공이란 시호 : 가 내려졌다. 문집 27책이 있고, \'이기휘편\', \'제양록\', \'퇴계서절요\', \'사례상 : 변통고\', \'병명발휘\'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 : 경내에는 경행사, 호인당, 앙지재, 백승각등 9동의 건물이 있는데 경행사는 : 정면 3간 측면 2간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강당인 호인당은 정면 5간, 측면 2 : 간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 : ▣도산서원▣ : : dosan2.jpg : : 퇴계 이황선생은 연산군 7년(1501) 현재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출생 : 하여 선조 3년(1570) 에 돌아가셨다. : 3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단양군수, 풍기군수, 공조판서, 예조판서, 우찬성, : 대제학을 지냈으며 사후에 영의정을 추증되었다. : : 70여회나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연구, 인격도야, 후진양성에 힘써 : 이 나라 교육 및 사상의 큰 줄기를 이루었고 만대의 정신적 사표가 되셨다. : : 선생은 명종 16년(1561) 에 도산서원을 세웠고 사후 4년만인 선조 7년 : (1574)에 문인과 유림이 서원을 세웠으며 선조임금은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 : 원의 현판을 사액하셨다. : : 1970년 정부에서는 서원을 보수 정화하여 성역화 하였다. 주요 저서로 계몽 : 전의, 성학십도, 도산십이곡, 주자서절요, 심경후론, 활인심방, 예안향약, 자 : 성록 등이 있다. : : ▣도산온천▣ : dosanonchun.jpg : : 온혜의 옛 지명은 온계리였으며, 온혜로 바뀐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온계리라 : 고 불리게 된 이유는 이 마을에 온천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정확한 위치는 : 알 수 없으나 옛날에는 수질이 매우 좋은 온천수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 이 소문을 들은 나환자들이 많이 모여들자 도산의 유림들이 온천을 흔적도 : 없이 묻어 버렸다고 한다 : : 온천수특징 : 지하 580m에서 토출되는 약알칼리성에 중탄산나트륨천이 함유 : 된 PH 9.26의 양질수로 수온은 25.3(도), 일일채수량은 4,600톤,그 효용으로 : 는 모세혈관 확장, 혈압강화, 심장부담 감소 및 피부를 매끄럽고 부드럽게 : 하는 온천수이다.(안동⇒와룡⇒도산서부⇒도산서원) : ▣동부동 5층 벽돌탑▣ : : dongbu.jpg : : 기와의 모습으로 보아 목탑의 영향을 받고 있다. 안동지역의 대표적인 벽돌 : 로 만든 탑이다. : : 안동역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탑 부근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는 점으로 미 : 루어 이곳이 사찰지임을 알 수 있다. 이 탑은 후세의 보수로 인해 기단부는 : 원형을 잃었는데 지금은 높이 42cm의 긴 화강암대석 3단이 놓여 있다. 탑신 : 에는 층마다 감실을 설치했다. \'영가지\'를 통해서 이 탑 역시 법흥사탑과 같 : 이 7층이었고 금동으로 만든 상륜부가 있었으나, 선조 31년(1598) 임진왜란 : 직후 명나라 군인들이 약탈해 갔음을 알 수 있다. 6.25전란 때 일부 파괴된 : 것을 1962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통일신라시대의 벽돌탑으로 높이 : 8.35m, 기단폭 3.65m이다. : : ▣묵계서원▣ : mukgae.jpg : : 안동에서 길안.포항방면으로 약 30분을 달리면 왼편에 묵계서원 안내를 볼 : 수 있다. 묵계리 구 고갯길을 따라 100m쯤 가면 왼쪽에 서원이 자리잡고 있 : 다. 이 건물은 보백당 김계행(1431~1517) 선생과 응계 옥고(1382~1436)선생 : 을 봉향하는 서원으로 숙종 13년(1687) 에 창건되었다. 보백당 선생은 조선 : 초기 성종때 대사성을 역임, 이조판서 양관대제학으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정 : 헌공이다. : : 묵계리에서 \'묵계새마을교\' 를 건너 하리 골짜기길을 따라 500m쯤 가면 자 : 연과 조화를 이룬 만휴정이 있는데 그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이다. 정 : 자에는 만후정 현판외에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 이란 선생의 유훈 및 류도 : 원, 김굉, 김도행, 정박 , 이돈우, 김양근공 등 명망이 있는 분들의 시판과 김 : 양근공의 중수기가 게판되어 있다. : : ▣봉정사극락전▣ : : bongjeongsa.jpg : : 서기 672년에 의상조사 (625~702)에 의하여 창건된 안동에서 가장 큰 사찰 : 로, 물은 본절10동 동서 2개의 암자에 9동이 있어 모두 19동이다. 극락전은 : 국보15호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이고, 대웅전은 보물55호로 : 조선초기의 건물로 추정되며, 화엄강당은 보물448호, 고금당은 보물 449호 : 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많은 문화재들은 각 건조물들이 상호간에 여 : 주는 균형미가 아주 빼어나다. : : 고려의 건물로 주심포집인 극락전과 조선조의 건물인 다포계통의 대웅전이 : 나란히 있어 고건물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 : 극락전은 기둥의 배흘림, 공포의 단조로운 짜임새, 내부가구의 고격함이 건 : 물의 특징이며, 재하나하나가 모두 국보적 기법을 갖추고 있어 한층 더 높이 : 평가 되고 있다.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99년에 다녀간 절이기도 하다. : : ▣태사묘▣ : : teasa.jpg : : 태사묘는 안동시의 중심부인 북문동에 자리잡고 있으며, 고려 개국공신 김선 : 평, 권행, 장길 삼태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 1481년 (성종12)에 관찰사 김자행이 목면과 베를 주고 예우하면서부터 묘우 : 를 세우는 터전을 마련했고 이어서 1540년 (중종35) 안동부사 김광철이 현 : 위치에 묘를 건립하였으며, 경상도 관찰사 권철이 제전을 설치하고 노복을 : 주었다. : : 보물각에는 삼태사의 유물인 옥관자 외 21점이 보존되어 있다. 숭보당 안 : 에는 퇴계 선생이 지은 중건기문 등이 게판되어 있다. 묘정에는 삼공신비가 : 세워져 있다. : : ▣병산서원▣ : : byunsan.jpg : : 안동에서 약 30분 하회방면으로 가다 하회입구에서 병산서원으로 들어간다. :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적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절제와 간결,단순과 체 : 계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유교건축의 백미이다. 병산서원의 전신은 풍산현 : 에 있던 풍악서당으로, 고려말부터 사림의 학문의 전당이었다. 1613년(광해 : 군 5년) 우복 정경세 선생 등 유림의 공의로 서애 류성룡 선생의 학덕을 기 : 리기 위해 존덕사를 창건하고 위패를 봉안했다. : : 1629년 선생의 셋째아들인 수암 류진공을 배향했으며, 1863년(철종14년) \' : 병산\'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68년(고종 5년) 대원군 :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때 제외된 전국47개 서원 중의 한 곳이다. 3월과 9 : 월 초정일에 향사하고 있다. 산과 강이 어우러져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이곳 : 에는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 : ▣신세동 7층전탑▣ : : sinsaedong.jpg : : 국보로 지정된 벽돌로 정교하게 쌓은 문화재이다. : 석탑이 풍미하던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탑으로 안동의 독특한 전통과 문 : 화의 창조성을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이 탑은 법흥동 군자정 부근 : 에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 (벽돌탑)으로 통일신라시대인 8세 : 기 경에 건립되었다. 기단부와 탑신부 및 상륜부로 되어 있었으나 현재 상륜 : 부는 노반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유실되었다. 기단부에는 네모꼴로 팔 : 부중상(八部衆像) 과 사천왕상(四天王像) 그리고 12지신을 양각한 판석(板 : 石) 을 세워 축조하였으며 탑신부는 진회색의 무문전을 어긋나게 쌓아올렸 : 다. 현재의 높이는 17m이고 기단 폭은 7.5m이다. : : ▣안동댐 민속박물관▣ : : minsok.jpg : : 안동댐 민속경관지 안에 있다. : 박물관내 전시실에는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사람이 나서 일생을 살다가 죽음 : 에 이르기까지의 통과의례를 중심으로 관, 혼, 상, 제인 사례에 중점을 두었 : 으며, 각종 민속놀이도 재현, 전시하여 안동문화의 전통과 얼을 한눈에 볼 :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민속자료 3,7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 : 이와 함께 야외박물관 전시물로는 석빙고, 월영대(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2 : 호), 선성현객사(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9호 ), 초가도토마리집 (경상북도 : 민속자료 6호), 초가토담집(경상북도 민속자료 14호), 이필구ㅁ자와가집, 박 : 은숙초가겹방집, 이원모ㅁ자와가집, 박분섭 까치구멍집, 이춘백 초가집, 안동 : 다례원, 물레방아, 연자방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다양한 전시물들은 : 관광객은 물론, 학생들의 교육장으로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 : 특히 박분섭 까치구멍집과 박운숙 초가겹방집은 헛제사밥이 유명하며, 이춘 : 백 초가집은 건진 국수가 별미이다. 안동다례원에는 차를 이용한 밥, 떡, 죽, : 국수, 가루차, 잎차우림 등이 준비되어 있어 기호에 맞게 맛볼 수 있다 : : ▣하회마을▣ : : haheo.jpg : : 하회마을은 전국유수의 풍산유씨 동족마을이며, 그 터전은 낙동강의 넓은 강 : 류가 마을 전체를 동.남.서 방향으로 감싸도는 명지이다.그 지형은 태극형 : 또는 연화부수형이라고 한다. : : 유씨가 집단마을을 형성하기전에는 대체로 허씨, 안씨 등이 유력한 씨족으로 : 살아왔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1635년(인조13)의 <동원록>에도 삼성(蔘 : 姓)이 들어 있기는 하나 이미 유씨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 : 고 있어, 그 이전에 유씨등의 기반이 성립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유 : 씨의 인향조는 8세 전서 종혜씨로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과 같은 유씨의 동 : 족기반은 종흉조 유운룡, 유성룡 형제시대에 이룩된 것이다. : : 유운룡은 시조에서 14대의 종손이며 유성룡은 시손인데 모두 문중의 거봉이 : 어서 이 두 계손들을 겸암파, 서애파로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에서 유서 깊 : 고 규모가 갖추어진 가옥으로서 보물 또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가옥들은 : 모두 풍산읍씨의 소유인데, 특히 그 중에서도 유운룡과 유성룡의 유적이 중 : 추를 이루고 있어 유씨 동족마을의 형성시기와 역사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 : 다. : : 이 마을을 감싸도는 화천(花川)은 낙동강 상류이며 그 둘레에는 퇴적된 넓은 : 모래밭이 펼쳐지고, 그 서북족에는 울창한 노송림이 들어서 있어 경관이 아 : 름답다. 강류의 마을 쪽이 백사장인 데 반하여 건너편은 급준한 층암장벽의 : 연속이어서 어려 정대가 자리잡고 있어 승경으로서의 연모도 잘 갖추고 있 : 다. 강류의 북쪽 대안에는 이곳 자연의 으뜸인 부용대의 점벽과 목연정, 화 : 천서당이 있으며, 서북쪽에서 강물이 돌아나가는 즈음에는 겸안정과 상봉정 : 이 자리잡고 있어 일련의 하회명구를 이루고 있다. 이곳 강의 최대폭은 대략 : 300m이며 최대수심은 5m에 이른다. : : 강 건너 인근과의 교통수단은 나룻배이다. 과거에는 음력 7월 보름에 부용대 : 밑에서 시회가 있었으며 시회와 아울러 유명한 줄불놀이가 벌어졌었다. 이 : 강상류화(江上流花)의 놀이는 하회별신굿과 함께 이 고장의 오랜 민간전승놀 : 이이다. 별신굿에 쓰인 가면들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제작연대는 고 : 려시대로 추정되어 하회마을의 역사적 배경이 뿌리깊음을 말해 주고 있다. : : 풍산으로부터의 진입도로와 연결된 큰 강이 이 마을의 중심부를 동서로 관 : 통하는데, 이 마을 길의 북쪽을 북촌이라 부르고 그 남쪽을 남촌이라 부른 : 다. : 1988년 현재 남북촌의 총 가구수는 188가구이다. 이들 가옥 중 보물로 지정 : 된 가옥은 보물 제306호인 안동양진당과 보물 제414호인 충효당이 있다. : 또한 중요민속자료로는 하회북촌댁(제84호), 하회원지정사(제85호), 하회빈연 : 정사(제86호), 하회유시주가옥(제87호), 하회옥연정사(제88호), 하회겸암정사 : (제89호), 하회남촌댁(제90호), 하회주일제(제91호) 등이 지정되어 있다. : 이들 지정 가옥들은 모두가 유씨집안의 소유이다 : : ▣오천 광산김씨유적지▣ : : ochun.jpg : : 안동에서 도산서원 방면으로 약 20분거리에 목조건물이 우치해 있는 것을 : 차창으로 볼 수 있다. 점심이나 휴식을 겸하여 들른다면 좋은 위치이다. 안 : 동댐 수몰시 광산김씨 예안파 소유의 문화재를 이곳으로 집단 이건하였다. :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의 소장 고문서,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소장 전적, 탁청 : 정, 후조당, 탁청정종가, 광산김씨 재사 및 사당,유물전시관등이 있다 : : ▣임청각▣ : : imcunggak.jpg : : 99칸의 집이었으나 일제의 철도건설로 반이상이 잘려 나간 상태이다. 독립 : 운동으로 인하여 집안이 풍지박산이 나고 현재는 잘려나간 자리에 아직도 : 일본이 놓은 중앙선 철도소리만 요란하다. : : 세종 때 영의정을 역임한 용헌 이원의 여섯째 아들 영산현감 이증이 안동 : 산수의 아름다움을 좋아하여 이곳에 정착하였다. 증의 셋째아들 형조좌랑 이 : 명이 중종 때 건립한 정자는 평면구성이 \'J\'자형으로 된 조선 중기의 별당형 : 정자건축이다. : 목조건물로는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임진왜란을 겪어 온 오랜 건물이다. 임 : 청각이란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귀절 중 \'동쪽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에서 따온 것이다. 바로 임청각 : 앞을 흐르는 맑은 물과 영남산 양지바른 곳에 터전을 잡은 건물이 절묘한 : 대비를 이룬다. 농암 이현보, 백사 윤훤 등 제현들의 시판이 게판되어 있다. : : ▣예안향교▣ : : yean.jpg : : 위치: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204-1 : 조선 시대에는 1군에 1향교를 두었는데, 예안향교는 예안현에 소속되었던 향 : 교이다.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으며, 선조 34년(1601년)에 중소가 있었고, 영 : 조 21년(1745년)에 크게 고쳐 지었다. 향교 내에는 대성전, 명륜당, 전사청, : 동.서재가 있다. : : ▣이천동 석불상▣ : : icheondong.jpg : : 안동시 북쪽 이천동 태화산 산록 \'제비원\'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 입상이 : 다. 일반적으로 \'제비원 미륵\'으로 친숙하다. 연미사(燕尾寺) 옛 터에 있는 : 석불상인데 지금은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연미사로 명맥을 이어 오고 있 : 다. : : 거대한 자연석 화강암 석벽에 12.38m에 달하는 신상(身像)을 새기고 다 : 시 그 위에 별개의 머리를 얹은 구조로 거구이면서 토속적인 고려불상의 양 : 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이미 안동소주의 등록 상표(1920) : 로 호응을 받은 바 있는 등 외부에 안동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이다. 제비원 : 은 \'성주의 본향 어드메냐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일러라\' 고 시작되는 : 성주풀이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명(明)나라 장수 이여송이 칼을 빼어 불상의 : 목을 쳤다는 등 많은 전설도 지니고 있다. 석불상 바로 뒷편에는 경상북도 : 유형문화재 제99호로 지정된 3층석탑이 있다. : : ▣육사 생가유적비▣ : : yuksa.jpg : : 민족시인 육사 이원록(1904-1944) 선생의 시비이다. 독립운동가이며 시인인 :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며, 한편으로는 주옥같은 시를 쓰다 : 가 일본 경찰에 잡혀 중국 북경 감옥에서 돌아가셨다. 육사 선생의 생가는 : 안동댐으로 인해 안동시 태화동으로 옮겨갔고, 옛집이 있던 자리는 물에 잠 : 겼다. : : 1993년 당시 안동군에서 물에 잠긴 생가터를 흙으로 돋우어 높이고, 선생을 : 추모하는 시비를 세웠다. 비는 포도 모양으로 다듬은 일곱 개의 화강암위에 : 동판(구리판)으로 만든 육사 선생의 얼굴 모습과 대표작 \'청포도\'가 새겨진 : 비를 얹어놓았다. : : 보물각에는 삼태사의 유물인 옥관자 외 21점이 보존되어 있다. 숭보당 안에 : 는 퇴계 선생이 지은 중건기문 등이 게판되어 있다. 묘정에는 삼공신비가 세 : 워져 있다. : : ▣지례 예술촌▣ : : gile.jpg : : 조용한 독서의 시간과 창작활동에 좋은 고건축이 있다. : 임하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있던 고건물들을 이곳에 이건 복원하여 조성하 : 였다. 예술인들의 창작활동 및 회의장소, 전통생활학습장, 유교연수원 등으로 : 활용되고 있으며 문화재 3점 (지촌종택, 지촌제청, 지산서당)이 있다. 특히 : 지산서당은 지례예술창작촌의 중심건물로 쓰이고 있으며 각종 학술 모임이 : 이루어지고 있는 건물이다. : : 임동면 소재지 500 m 를 못미쳐서 오른쪽에 있는 수곡교를 건너 포장도로 : 를 따라 박곡리를 지나 고개마루를 올라간다. 고개마루에서 왼쪽으로 가면 : 지례예술창작촌이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용계은행나무가 있다. : : ▣조탑동 전탑▣ : : jotopdong.jpg : : 화강석과 벽돌을 혼용한 전탑으로 조성이후 여러차례의 손질 때 그렇게 된 :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높이 8.65m 기단 너비 7m로 5층 전탑은 통일신라 :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 : 안동에서 약 35리 지점에 일직면 소재지가 있고 이곳에서 5리 쯤 가면 5층 : 전탑이 있다. 이곳에서 골짜기로 40리쯤 더 들어가면 5층으로 추정 되는 무 : 너진 전탑 1기가 있었으며, 또한 국보 제16호인 신세동 7층전탑과 보물 제 : 56호인 동부동 5층전탑 등이 남아있는 것으로 미루어 안돋지역에는 다수의 : 전탑이 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 : 이 부근에는 석탑재료, 석등재료 등이 남아있고 석불이 있었다고 하니 큰 절 : 터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감실 옆의 양각된 인왕상은 조형미가 일품이어서 : 사진작가들의 촬영대상이 된다 : : ▣추원재▣ : : chuwonje.jpg : : 이 재사는 원래 상촌 김자수(1351-1413) 선생의 어머니 일직 손씨의 묘소 : 아래에 있던 건물인데, 안동댐으로 수몰되어 197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 : 았다. 상촌 선생은 안동시 금곡동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말 충신, 효자로 이름 : 높다. 그는 공민왕 23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충청도 관찰서, 대사성 등을 : 지냈으며, 고려가 망하자 절개를 지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 그러나 조선 태종이 강제로 벼슬을 내리고 부르자, 서울로 가던 중 포은 정 : 몽주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광주에 이르자 자결했다. : : 추원재 앞에는 고려 공양왕이 내린 상촌 김자수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비(경 : 상북도 유형문화재 38호)가 있다. 비의 앞면에는 \'효자 고려 도관찰사 김자 : 수지리(孝子高麗都觀察使金自粹之里)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그의 행적과 : 어머니에 대한 효행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 효자비도 안동댐 건설로 인하 : 여 추원재와 같이 이곳으로 옮겼다. : : ▣영호루▣ : : younghoru.jpg : : 영호루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영남 3대루의 하나로, 안동의 : 대표적인 누각이다. 고려 시대에 건축되었으며, 원래 현재의 위치에서 낙동 : 강 건너편 물가에 있었다. 홍건적의 난 때 안동까지 피난 왔던 고려 공민왕 : 이 난이 평정되자 개경으로 돌아가서 \'영호루\'라고 쓴 현판 글자를 내려 주 : 었다. 이 현판을 걸기 위하여 1567년 안동 판관 신자전이 누각의 규모를 더 : 욱 확장하여 지었는데, 누가 강물에 너무 가까이 있어 홍수로 인해 떠내려가 : 고 다시 짓기를 몇 번이나 거듭하다가, 1934년 갑술년 홍수 때는 건물이 완 : 전히 떠내려 갔다. : : 현 영호루는 1970년 철근 콘크리트로 건축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한옥 누 : 각이다. 북쪽 면에는 공민왕 친필 한자 현판 \'영호루(映湖樓)로 걸고, 남쪽 : 면에는 박정희 대통령 친필 한글 현판 \'영호루\'를 걸었다. : : ▣애일당▣ : : ail.jpg : : 이 건물은 농암 이현보(1467-1555) 선생이 46세 때 지었다고 한다. 94세의 : 부친이 늙어감을 아쉬워하며 하루하루를 아낀다는 뜻에서 \'애일당(愛日堂)이 : 라고 하였다고 하니, 당호(집에 붙인 이름)에도 선생의 지극한 선생의 효성 : 이 나타나 있다. 농암 선생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벼슬은 안동 부사를 거쳐 : 지중추 부사에 이르렀다. : : 특히, 시문(시와 문장)에 뛰어나 그가 지은 시조 \'어부사\'가 청구영언에 전한 : 다. : 또, 애일당 축대 아래쪽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43호로 지정된 \'농암 선생 : 정대 구장( 암선생정대특구장)\'이란 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 : 바위의 면을 평평하게 깎은 후 글자를 음각(들어가게 새김)한 이 글자는 한 : 자의 크기가 가로 100cm, 세로 70cm나 된다. : : ▣퇴계종택▣ : : toigey_jongtek.jpg : :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은 50세 때, 이 곳 토계의 시냇가에 \'한서암\'을 : 짓고 살기 시작하여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게 되었다. 원래의 건물은 화재로 : 없어지고 현 종택은 1929년 옛 종택의 규모를 참고하여 다시 지은 것으로, : 정문에 \'퇴계 선생 구택(退溪先生舊宅)\'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퇴계 선생의 : 묘소는 종택에서 남쪽으로 약 1km 떨어진 건지산 중턱에 있다. : : ▣퇴계묘소▣ : : toigye_tomb.jpg : : 위치 : 도산면 사무소앞에서 퇴계종택을 거쳐 약 1km지점 산에 위치하고 있 : 다. 선생은 생전에 자신의 비에 적힐 비문을 썼으며 후손들이 자기를 과대칭 : 송하는 것을 방지했다. : : 선생의 유품 : 서기(書 ), 매화연(梅花硯), 청려장(靑藜杖), 등경(燈), 연갑 : (硯匣), 흑단연(黑端硯), 옥서진(玉書鎭), 안석(安席), 투호(投壺), 투호(投壺), : 혼천의(渾天儀), 완석(莞席). : : ▣소호헌▣ : : sohohun.jpg : : 이 건물은 건축 연대를 확실히 알지 못하나, 조건 중기의 학자 서해 선생이 : 서재로 쓰기 위해 명종조에 지은 별당이다(청풍 군수 이고가 건립하여 무남 : 독녀 사위인 서해에게 무려주었다는 설도 있음). 그 후 서해는 이 집을 아들 : 인 약봉 서성(1558-1631)에게 물려주었는데 이 집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 정(丁)자형의 기와집으로 되어 있다. : 소호헌 동편에 있는 본체는 암행어사, 5도 관찰사 및 형조, 병조 판서를 역 : 임한 약봉이 태어난 건물이다. : : ▣체화정▣ : : chehwajung.jpg : : 이 정자는 만포 이만적(1663-1744) 선생이 효종 때에 지어 학문을 닦던 곳 : 이다. 그 후 순조 때 효자로 정려(국가에서 충신, 효자, 열녀가 살던 마을에 : 정문을 세워 기리던 일)를 받은 용눌재 이한오 선생이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 : 고 효성을 다하던 곳이기도 하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정자 앞 : 연못에는 삼신산을 본떠 만든 세 개의 인공섬이 있고, \'담락제(湛樂 )\'란 현 : 판 글씨는 조선조 제일의 화가로 칭송받는 단원 김홍도가 썼다. : : ▣학봉묘소▣ : : hakbong_tomb.jpg : : 조선선조대 명신이며 학자인 학봉 김성일 선생의 묘소이다. 선생은 일찍이 : 퇴계 문화에서 성리학적 수양을 쌓고 인격을 도야하였으며 그 윤리와 가치 : 를 직접 실천해 나가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좌청룡 우백호의 길지에 위치하 : 고 있다. 묘소옆에 봉황알처럼 생긴 둥근 바위가 있는데 이것은 매장장소에 : 서 출토된 것이다. : : ▣안동댐▣ : : andongdam.jpg : : 1976년에 완공된 안동댐은 높이 83미터, 길이 612미터에 총저수량 12억 : 4,800만 톤으로 홍수 조절과 전력공급 이라는 댐의 기본 목적은 물론이고 : 농,공업용 그리고 생활용수까지 공급하는 다목적 댐이다. : : 댐의 정상에는 우리 나라에서 세번째로 큰 인공 호수인 안동호의 수려한 경 : 관이 펼쳐져 있고 선착장이 위치해 있어 유람선 이용이 가능하며 댐 주변은 :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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