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충현약용버섯

안동사랑

홈 > 회사소개 > 안동사랑

낙동강이 갖는 역사적 의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5-12-16 10:55 조회1,466회 댓글0건

본문

> >
>


낙동강이 갖는 역사적 의의
-글/추포 : 류희걸-



hahye-1-07.jpg
[ 안동 하회의 부용대 ]


1. 개황



낙동강은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긴 강으로, 길이 513.5㎞, 유역면적은 2만 3,860㎢이다.
삼국시대에는 황산하(黃山河). 황산강(黃山江). 황산진(黃山津)으로 불렸고 고려.조선시대에 와서 낙동강.낙수(落水).가야진(伽倻津) 등으로 불렸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낙수로, 〈택리지〉에는 낙동강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래 낙동이란 가락(駕洛)의 동쪽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낙동강은 영남지방의 산물.세미(稅米) 등의 운송로로 이용되었는데, 이때 가락국의 땅이었던 <상주의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란 뜻으로 낙동강이라 불리게 되었다.
〈연려실기술〉 지리전고(地理典故)편에도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을 말함이다>라고 했다.

강원 태백 함백산(咸白山:1,573m)에서 발원하여 상류부에서는 안동을 중심으로 반변천(半邊川)을 비롯한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서쪽으로 곡류하다가 함창(咸昌) 부근에서 다시 내성천(乃城川) ․영강(嶺江) 등 여러 지류를 구심상(求心狀)으로 받아들이고, 유로(流路)를 남쪽으로 돌려 상주(尙州) 남쪽에서 위천(渭川)을, 선산(善山) 부근에서 감천(甘川), 대구(大邱) 부근에서 금호강(琴湖江), 남지(南旨) 부근에서 남강(南江)을 합친 뒤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삼랑진(三浪津) 부근에서 밀양강(密陽江)을 합치고 나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남해로 들어간다.

낙동강은 경사도가 매우 완만하여, 400km 상류의 안동에서도 해발고도 100m에 달하지 못하고 퇴적이 심한 하류부에서는 천정천(天井川)을 이루는 데다가 삼랑진에서 물금(勿禁) 사이의 약 19km 구간은 홍수 때에 강물의 소통이 잘 안되는 협착부(狹搾部)를 이루므로, 지류 남강에 댐이 건설되기 전까지는 범람이 심하였다.
한편 낙동강은 저산성 산지(低山性山地) 또는 구릉지를 흐르기 때문에 범람원(氾濫原)의 발달이 없고, 따라서 김해삼각주(김해평야)를 제외하고는 강 연안을 따라 소규모의 평야가 펼쳐져 있을 뿐, 넓은 충적지는 비교적 적다.

주요평야는 상류부의 안동분지, 중류부의 대구분지, 하류부의 경남평야로 나뉘는데, 안동분지는 여러 지류 연안의 침식분지들이 연결된 규모가 큰 평지이고, 대구분지는 본류와 금호강 ․감천 외 여러 지류 연안에 수지상(樹枝狀)으로 분포하는 평야이며, 경남평야는 창녕(昌寧) 이남의 본류 연안과 남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평지 및 김해삼각주를 포함한다.
낙동강 하구부에 형성된 김해삼각주는 남북 18km, 동서 16km의 대삼각주로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대충적평야를 이루는데, 낙동강은 구포(龜浦) 상류 2km 지점에서 2대분류(二大分流)하면서 거대한 삼각주 하중도(河中島)를 형성하고, 다시 망상 분류(網狀分流)를 하면서 여러 작은 하중도를 분리시키고 있다.

낙동강은 유역의 논 약 86만ha의 농업용수와 여러 시읍(市邑)의 상수도용수 및 공업용수원이 되고 있는데, 특히 1969년 남강에 건설된 남강댐과 1976년 건설된 안동댐은 수자원의 효과적인 이용에 기여하는 한편, 각각 1만 2600kw, 9만kw의 전력을 생산함으로써 유역의 농공업 발전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옛날에는 내륙지방의 교통동맥이 되어 조운(漕運) 등에 크게 이용되면서 강기슭에 하단(下端) 구포 삼랑진 수산(守山)풍산(豊山) 안동 등의 선착장이 번창하였고, 또 6․25전쟁 당시에는 유엔군의 최후 방어선이 된 바 있다.
요즈음은 김해 삼각주 말단부에 있는 을숙도(乙淑島) 일대는 철새도래지로서 전세계에 알려저 있기도 하다.



2. 안동의 합수지점



안동은 낙동강의 상류로 물야탄(勿也灘)과 반변천(半邊川)이 귀래정(歸來亭) 앞에서 합수(合水)하여 서남으로 흘러가 상주에서부터 낙동강(洛東江)이 된다.

3. 강의 개념
강(江)이란 내(川)와는 달리 흐르는 물만을 말하지 않고 주변의 산천(山川)과 절벽(絶壁). 대(臺). 담(潭). 연(淵).을 총 망라해서 강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황지 발원(發源) 물줄기는 내려오면서 청량산 아래서 가라연(加羅淵)이 되고 고산에서 명월담(明月潭) 도산에 이르러 탁영담(濯纓潭). 그리고 여산 기슭에서 여강(廬江)을 이루어 개목에 이른다. - 반변천은 낙연(洛淵)의 비리연(飛里淵) 솔목의 선어연(仙漁淵) 와부탄에 이르러 개목과 합수 하여 호소(湖沼)를 이루고 그리고 상락대(上洛臺) - 부용대(芙蓉臺)-를 거쳐 상주(尙州) 낙동(洛東)으로 흘러가는데 이것이 곧 낙동강이다.



4. 안동의 역사적의의



낙동강의 머리는 간방(艮方)에 두고 꼬리는 곤방(坤方)으로 흘러 마치 하늘의 은하수 같다. 물은 돌아 옷의 띠처럼 둘렀으니 자고로 안동은 행주형의 길지(吉地)로 그 속에서 왕왕 문인 걸사가 허다히 배출되어 왔다는 문헌의 기록을 더듬어 볼 때 낙동강이야말로 우리 안동문화에 끼친 영향이란 매우 크다 아니 할 수 없다.

안동은 BC 57년 염상도사 가 이곳 길지를 찾아 처음 창령국을 세웠다고 전하나 이는 자세하질 않고 다만 신라의 고타야 군에서부터 역사의 기록이 있다. 그이래 지명은 고녕. 고장. 능라. 일계. 지평. 영가. 길주. 복주. 화산. 안동등 무려 17번이나 이름이 바뀌어 왔다.



5. 영가의 전설



한때는 지명을 영가라 하였으니 이는 반변천과 물야탄의 두 물줄기가 아름답다는 뜻이다. [영지는. 이(二) + 수(水) = 영(永)]
그런데 영가의 물줄기는 사람 인자가 꺼구로 된 형국이라 과부가 득실 거려 맹사성의 예언을 따라 안동 읍내 두 개의천 당북천과 천리천을 직강(直江)으로 끌어넣어 수계(水系)를 어질 인(仁)자로 바꾸고 큰 나무를 심어 수(水)와 목(木)은 조화를 이루어 그 액을 면했다고 한다.
그때 믿음으로 숭상하던 나무들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으니 임청각(臨淸閣) 앞 도로 복판에 서있는 회나무가 그것이고 또 시장이 정월보름날 고사지내는 나무 <부신목>이 그것들이다.

자고로 길지는 강을 끼고 이루어지는 법이다. 서울은 한강. 평양은 대동강. 대구는 금호강. 진주는 남강. 안동은 낙동강.임을 말할 수 있다.



6. 맺는말



안동은 댐 다(多)의 고장 즉 물의 고장으로 자랑할 수 있다. 물론 두 개의 댐으로 고향(故鄕)을 수장(水葬)한 아픔은 있어도 이를 감수(甘受)하며 남을 위해 봉사할 줄 아는 선비의 고장 안동, 양반고을 안동이다. 그리고 21세기를 지향(指向)한 확고한 비전(飛箭)을 가지고 도약하고 있는 안동이란 것을 이 기회에 자랑하고 싶다.






>
  • 나의쇼핑정보
  • 장바구니
  • 배송조회
  • 오늘본상품
  • 없음
  • 상단으로 이동